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김수현 <책 리뷰>
에세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정말 별거 없는 작가가 본인들의 생각이 세상의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 같아서 그동안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에세이를 바라보았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이 나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얼른 읽어보고 돌려 드려야지'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그만 풍덩 빠져 버렸다. 내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요즘 말로 뼈를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평범한 어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점,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이상을 떠나보내는 지점, 어른의 사춘기는 그 지점에 오는 게 아닐까. 물론 그 순간이 슬프고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환상과 기대감에서 벗어나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꾸리는 것, 어른의 숙제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라는 존재는 항상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개발서 들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점점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느껴졌고, 이 부분이 작가의 말처럼 슬프고 씁쓸했었다. 그러던 중 어른의 사춘기이며, 숙제다 라는 위의 말을 보면서 모두가 겪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차분하게 적응을 해 나가는 중이다. 그래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좇으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했고, 그것은 그의 내면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취미를 일부러 갖지 않았다. 온전히 내가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이야기한 위에 것들 중 특히 '경제적 안정'을 위해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블로그를 쓰는 것도 그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공허함 뿐일 때 '인생 헛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를 위해 시간을 조금 양보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것 같은 세상에서 살기에, 뭐라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뭐라도 하고, 거기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기가 막힌 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도서 리뷰를 쓰고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인생에서 많은 부분들을 내려놓고 때때로 밖에서 들리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여유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빚을 갚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취업이 어렵다. 사회 진출이 자꾸 유예된다. 오프로 만이 대기업 공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그래도 벤츠는 못 사드린다. 취업을 해도 월급은 빠듯하다. 그 월급을 가지고, 결혼이라도 해서 신혼집을 장 말할라치면 은행에 빚을 지거나 부모에게 또다시 손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자식을 낳으면 나의 부모가 그랬듯 높은 양육비를 지불해야 하니 이 사이클로는 부모님께 벤츠를 사드릴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는 존재한다는 이유로, 평범한 삶을 산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경제적 정서적 빚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진짜 문제는 높은 양육비와 교육비, 등록금, 주거비 그리고 이를 감당할 질 좋은 일자리에 부족일 뿐이지 우리들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다.'
후아... 이 부분에서 참 많은 공감이 되었고 위로를 받았다. 분명히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 벤츠는 커녕 작은 차 하나 사기도 벅차다. 나의 노력이 부족한 거라며 더욱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 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기계과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은 팔순을 살았다 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는 기적을 이룬 대신 사소한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잃은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원에 가고 나무에 앉은 새를 보고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 것을 즐거움이라 여기지 않는다.'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나는 무엇으로 회복하는가. 나는 어느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하는 자신의 행복을 다루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론을 알면서도 생각해보고 실천하기가 너무나 힘든 숙제와도 같은 것들이다. 기계처럼 루틴 하게 살지 말고,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실천하는 것. 언제쯤 마음 편히 이런 것들을 좇으며 살 수 있을까 ?